나는 한자 사교육도 받아봤고 중국어도 공부했지만 한자에 대한 맹신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외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해도 아래와 같은 한심한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복장이 터질 지경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02/2012070202662.html
한자는 있는 글자 내에서의 조어력은 탁월하지만 새로운 의미를 포현하기 위해 결국은 새 글자가 필요하다는 문제 때문에 전산화하기가 어려운 극강의 단점이 있고 많은 글자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정작 중국 본토에서도 수많은 문맹자들을 양산하고 있는 표기언어이다. ‘需要’를 ‘수요’라고 알아본 것은 필자의 일종의 선행학습의 덕택이지 단어의 이해도가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설령 ‘需要’라는 글자를 몰랐다 하더라도, 그 뜻을 한 번 알고 난 뒤에도 그 글자들을 처음부터 알았던 사람과 몰랐던 사람이 다른 의미로 이해하고 있겠는가? 찬물은 ‘찬물’이라고 쓰고 냉수는 ‘冷水’라고 적어야 한다는 데에 이르면 정말 기가 찬다. 그렇게 적어야 의미 파악이 빠르단다.
언어학에서는 소리와 의미 사이의 연결은 임의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엄마’라는 소리가 처음부터 ‘나를 낳아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한자와 그 뜻의 연결도 임의적인 것에 불과하다. ‘人’이라는 글자를 사람의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고 해서 기호 ‘人’이 근본적으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은 미신이다. 비슷하게 생긴 ‘入’은 ‘사람’이 아니고 ‘들어가다’란 뜻이 되어야 할 어떤 이유라도 있단 말인가.